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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호 Vol.30 - 김명원



 유언 혹은 종언

  김명원






 검은 심장이 건자두로 쪼그라들자 숨쉬기 힘든 고통으로 절절 끓는 시간들이 오고 있었다. 12월, 창밖으로는 텅 빈 새 떼가 날아가고, 마지막 남은 한 숨 한 호흡이 끌고 간 문장들이 깡마른 편백나무 가지 사이로 흩날리고 있었다. 죽음이 빨대를 꽂고 조금 남은 계절마저 들이마시는 순간이었다.
 
 거리에서 발작을 일으켜 병원에 도착한 죄렌 아비 키에르케고르(1813-1855)는 “나는 범죄를 통해 태어났다. 나는 신의 뜻을 거스른 채 만들어졌으니 나의 생명을 앗아가 다오!”라며 임종에 임했다. 고열에 시달리던 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는 “비앙숑을 불러다오! 그가 나를 살릴 거야”라고 그의 작품 속 유능한 의사를 부르다 죽었다. 뇌막염으로 섬망에 든 오스카 와일드(1854-1900)는 샴페인을 마시고 아편 주사를 맞은 후 “나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내 처지를 넘어 죽음을 맞이한다.”고 스러졌다. 백혈병으로 매 순간이 지옥 같다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는 스위스 요양원에서 여자친구에게 죽음에 이를 수 있도록 제발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우울증으로 아내와 동반 자살한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는 “나의 모든 친구들이 길고 긴 밤 뒤에 찾아오는 해를 볼 수 있기를. 그러나 참을성 없는 나는 그들보다 먼저 떠난다.”고 유언장에 적었다. 침대 무덤에서 생애 마지막 8년을 보냈던 하인리히 하이네(1797-1856)는 “하나님은 나를 용서하실 거야. 그게 그분의 직업이거든.”이라며 죽음을 맞았다. 나의 아버지 김창하(1913-2003)는 대장 수술 후 중환자실 면회에서 내게 “바쁜데 왜 이런 델 부러 왔느냐. 산 사람은 죽는 사람을 마중할 필요가 없다. 사는 데 열중해라.”를 남기고 눈을 감았다.
 
 그들은 가차 없이 죽음 속으로 녹아내렸고, 그들이 남긴 말들만 허공에서 채집되어 박제 상자에 보관 중이다. 가끔은 창백한 먼지 속에서 그들의 유언 혹은 종언들은 유언비어流言蜚語로 들리기도 할 터, 혹은 종언서표終焉書標로 우리 시속에 유령처럼 숨어들기도 할 듯.
 
 아픈 행간들이 신음한다.
 복제 불가능한 절규다.
 겨울의 끄트머리다.


 






 
 김명원 시인
 1996년《시문학》으로 등단.
 시집『달빛 손가락』『사랑을 견디다』『오르골 정원』, 시인 대담집 『시인을 훔치다』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