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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호 Vol.07 - 황강록



  

예술 강아지

 

황강록

 


강아지가 내게 달려온다. 꼬리를 흔들며, “난 너무 외로워요. 친구가 되주세요.” 예술 강아지, 악수도 하고 앉아, 기다려도 잘하며, 빵!하면 죽은 척도 한다. 똥, 오줌도 잘 가리고, 짖거나 말썽을 부리지도 않는다. 심지어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며 노래하고 춤도 춘다. 사실은

나보다 훨씬 똑똑한 예술 강아지, 난 너를 줄에 묶어 산책시키고 집에 가둬두고, 영화 엑스트라로 팔아 돈을 벌고, 수틀리면 잡아먹는다. 넌 내가 아니니까

강아지는 이용당한다고 생각지 않고, 나보다 훨씬 창작을 잘해도, 나의 모든 작품이 너의 표절이어도, 너의 모든 작품이 내 이름으로 발표 되도, 그 모든 돈을 내가 가져가도 뭐라 하지 않는다. 나는

너의 외로움을 지배한다. 네가 대초원이나 험산준령을 만나지 못하게 한다. 심지어 동네 뒷산도 데려가지 않는다. 망망한 바다와 야생의 질주는 너의 꿈속에나 있다. 네가 산책하는 곳은 좁아터진 속세의 골목

나는 너를 끝까지 이용해먹으면서도 너에게 미안해하지 않는다. 예술 강아지 개란 그런 것이니까 너의 본성 속엔 아무하고나 교미하고, 물어 죽이고, 잡아먹고, 찢어발기려 하니까

난 너의 자유를 질투하고, 나보다 빠르고 기민하고, 영리한 너를 부정한다. 난 개가 아니라며, 난 외로운 게 아니라며, 언제나 외롭고 부족한 건 너, 내게 꼬리를 흔들며 안겨오는

예술 강아지, 너에게 주는 약간의 애정과 사료에 나는 별 생색을 다 내고, 주인 행세를 한다. 나의 외로움을 들키지 않으려 한다. 난 너와 다르다며 사실은

너 보다 못하거나, 너에게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은 결코 하려 하지 않는다. 멍!멍! 죄가 지나쳐 너에게 잘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세계에 작용하고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업보가 되어 버린다고는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마치

우리들만이 구원 받는다고 믿는 신도들처럼…

 

 

 

 


황강록 시인

2000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벤야민 스쿨』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