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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찬란
김 산
아침에 일어나면 삭발한 뒤통수를 천천히 어루만진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또 한 번
불룩하게 솟아오른 언덕, 그 위에 핀 마른 잔디들
까슬까슬한 생각들이 손바닥을 쓰다듬는다
손금 위로 흐르는 강물과 강물, 그 사이에
가까스로 가까스로 입을 뻐끔거리는 다슬기와 돌고기 몇
오래 전에 죽은 슬픔이 물돌 아래, 깊이 잠들어 있다
밤이거나 새벽이거나 눈을 감고 천정을 보면서 빌고 또 빈다
예수야, 슬픔이 가득 차올라 비로소 그 슬픔이 광명하게 해다오
부처야, 세상의 가난이 나로 말미암아 너의 눈부심에 소금이 돼다오
어김없이 아침의 빛은 나를 깨우고
베갯잇 아래, 수북하게 떨어져 있는 살비듬
나뭇잎의 각질이 떨어지고 있다, 아 가을
여우비가 오시는 거리를 천천히 걸어가는 긴 머리 소년
소주병에 담은 참기름 냄새가 발끝에 흥건하다
김 산 시인
2007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키키』『치명』이 있음.
2016년 제주 4.3문학상, 2017년 부산일보 해양문학상, 2017년 김춘수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