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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7월호 Vol.01 - 박형준


 창가에 창호 문 하나

   

박형준

 

 

아무 얘기도 없이

누가 새로 단장한 문 하나를

창가에 기대여 놓았다

 

잠깐 낮잠 자다 설핏 본 문

 

가을이 오면 문을 떼어

창호지를 새로 발라

담벼락에 기대여 놓고 바람에 말리던 사람

 

낮잠 속에 잠깐 다녀가셨나

 

가을의 새 문을 달고

남은 풀로 우리는 풀죽을 쑤어먹고

첫 별이 뜨는

창호 문을 바라보았다

 

그와 누워 얘기를 나누다

잠이 들려 하면

창호지에

지나가던 새떼들도

사람들의 말소리도

꽃그늘 같은 것으로 남아

문은 서늘하게 젖어 있었다

 

설핏 든 낮잠에서 깨어도

슬픈 생각이 남아서

창가에 선다

 

창호지에 어른거리던

그늘만으로

세상을 보던 사람

창가에 그 사람의

가을의 문이,

새로 단장한 창호문으로

햇빛을 받으며 기대여 있다

 

 

 


 

 박형준 시인

 1991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빵 냄새를 풍기는 거울』『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있다』『』『생각날 때마다 울었다』『불탄 집』『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