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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호 Vol.05 - 이택경



  

그녀를 그리다

 

이택경

 

 

바가지에 담긴 조개를 힘껏 문질러 씻는다
바지락바지락바지락바지락

 

소용돌이 속에서 촉수를 오무린 채 바지락,
생의 흔적이 씻겨나가는 소리를 듣고 있었을까


냄비에 조개를 쏟아붓는다

 

끓어가는 냄비 속 서서히 데워지는 몸뚱이를 뒤채며 
참았던 숨을 희부옇게 뿜어내던 순간,
뻘 속을 기면서 살아온 세월을 되돌아보았을까

 

뜨거움을 견뎌낸 시간이 일생보다 길었을 그녀
한 겹 한 겹,
삶의 이랑을 넘을 때마다 늘어난 주름에
단단히 새긴 이력을 읽어주고 싶었을까

 

더는 버티지 못해 마지막 숨을 토해내는 바지락
날개를 펼치듯 몸을 열어 달큰한 속살을 내어놓는다
안간힘으로 쥐고 있던 의지가 떨어져나간 자리
반짝이는 흔적만 남아 있다

 

빈껍데기를 봉지에 담아 버린다
제 크기보다 몸피를 키운 껍데기
바지락바지락바지락

 

어머니를 산에 모시고 돌아오던 길
등나무 그늘에서 허기를 채운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렁주렁 매달린 등꽃을 맴도는
나비 한 마리를 좇고 있었다

 

 

 
 

 이택경 시인

 2019년 계간 《시선》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