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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새 최서진 버릇처럼 저녁을 걷는다 빛을 감춘 저녁을 이해하게 된다 새의 발로 저녁이 되면 젖은 얼굴도 아름다워 보인다 매달린 새들도 침묵의 자세를 배우기 위해 어둠에 붙들렸지만 여전히 나무로 새로 남아 있는 눈이 자주 붓는 마음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은 어디쯤 흘러갔을까 새의 발이 닿았던 수많은 구름을 본다 발등으로 연한 여름이 분다 웅크리고 앉아 어둠을 길게 한 모금 마신다 먼 곳에서는 빛이 넘어오는지 나무가 흔들린다 어둠을 붙들고 있는 것은 내 손이니 소란과 침묵을 번갈아 응시하다 새의 발목을 갖게 되었지 새들은 빛을 감춘 저녁에만 발끝으로 맴돈다 흔들리지 않는 고도를 지나 구름에 닿는다 먼 곳에서는 빛이 넘어오는지 기침이 난다 최서진 시인 2004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아몬드 나무는 아몬드가 되고』『우리만 모르게 새가 태어난다』가 있음. 김광협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