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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9월호 Vol.03 - 이병철



 

 

천렵

 

 이병철

 

 

  아이들이 족대로 강물을 뜨고 있다 물고기를 잡겠다는 의지가 하얀 종아리에 단호하지만 못 잡아도 즐겁다 족대로 물과 초록과 바람을 건지면 햇빛과 물방울이 일으키는 마찰에서 애완 무지개들이 태어난다 아이들이 무지개 한 마리씩 어깨에 얹고 물고기 모양의 나뭇잎을 잡고 있다 물고기는 아니지만 나뭇잎 물고기가 강물과 모래톱 사이의 평화를 찰랑이게 한다 말랑말랑한 발바닥 아래로 물고기들은 빠져나가고 애완 무지개들이 하나 둘 날아가도 아이들은 아이답게 웃는다 천렵은 물고기를 잡아야 끝나는데 능선을 넘은 커다란 구름이 풍경으로서의 강을 그물에 가둔다 구름을 빠져나온 실빛 몇 가닥 강에 망문(網紋)을 펼칠 때 아이들은 물고기도 떠내려가는 웃음도 잡지 못하고 처음부터 거기 없었다는 듯 그저 강이라는 하루의 세상에 투명한 잔상으로 맺힌다 족대는 어디 갔을까 파랗게 흐르는 고요 위로 물고기들이 별을 먹는다 빛과 어둠을 담는 양동이가 모래톱에서 지워진다

 

 

 

 

  

 

 이병철 시인

2014시인수첩에 시, 작가세계에 평론으로 등단.

시집 오늘의 냄새』, 평론집 원룸 속의 시인들』,산문집 ; - 물속에서 건진 말들』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사랑의 무늬들』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