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정재원
시든 화분 하나를 들고 와
아득이라고 '천국의 계단'을 네가 말할 때
소망했어 마취를
잠 속으로 들어가는 용량은 얼마만큼이었는지
목구멍에서 알약이 흘러가지 말았으면
네가 말하는 신을 떠올렸어
일그러지는
하루 중심에 우뚝 서 보았으면
혼자 지워지는 얼굴로 고공에서 환히 내려다보았으면
녹는 얼음 타고 떠내려가는 저것은 말문이 떨어져 나간 입
골목에서 달아나는 가로등
지우고 싶은 엊그제를 찾아가 몰아내고 싶었어
웃음 띤 얼굴은 차가울수록 선명하지
구름의 속눈썹으로 눈뜨고 싶어
비탈 없는 마을로 가서 하루 반나절쯤
고대 그리스어의 흘림체와 뒤섞여 모르는 사람이 되고
아가미 움켜쥔 밀물에 달 지문을 깜빡깜빡 찍고 싶어
수평선 끝점에서 까맣게 잊고도 싶어
큰 결이 바닥 물결로 숨어드는
정재원 시인
2019년《문예바다》로 등단.
시집 『저녁의 책과 집을 잃은 노래』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