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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무
최문자
한 번도 내가 아니었던 그 나무
그 나무에 있었으나 조금도 그 나무가 아니야 그 나무의 영혼도 쓸쓸함도 눈물도 허밍도 모두 내가 아니야
그 나무를 시작하는 프르스름한 언어일 뿐
잎이 아니고 언어라는 것이
왜 이토록 부드러워
나와 다른 꿈
다른 느낌
다르다는 건 숨을 곳이 많은 곳
젖은 신발을 신켜주며 잎으로 살라고 했다
젖어있는 것들의 가장자리는 살이 터지던 금속성
나는 엊그제 그 나무에서 죽고 싶어 혼났네
하필 당신 앞에서 잎인가 하고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그 나무가 삼킨 새들 그 나무로부터 그 나무를 수식하던 바람
우리는 아주 잠깐씩 눈을 마주칠 뿐 안절부절 목숨이었다가 어느 순간 잃어버린 우울이었다가 마지막으로 뛰어내릴 낭떠러지였다가 그 나무를 흘려보내는 일
누구의 잎으로 산다는 건 죽도록 내가 없는 것*
새로운 흙구덩이에 손을 넣는 것
안녕 안녕
오늘은 새처럼 날아가지 않겠어
무겁게 무겁게 무쇠처럼 떨어지겠어
얼마나 깊은지 모른는 한층 더 깊는 곳으로
* 최문자 시 <잎>에서
최문자 시인
1982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사과 사이사이 새』, 『파의 목소리』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 등이 있음.